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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의제문을 비롯하여 김종직의 글을 사초에 실 었어요.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지은 송나라 마지막 황제를 추모하는 글이었지만, 이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조선 초기의 왕권 찬탈과 권력의 부정함을 비판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후에 큰 논란을 낳 았어요.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연산군이 즉위한 후, 사초를 들추며 이를 문제 삼게 되면서 무오사화로 이어졌어요.무오사화는 연산군 4년에 발생한 사화로, 김일손이 편찬한 사초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문제 삼아 김일손을 비롯한 사림파가 대거 숙청된 사건이에요. 이는 훈구파가 연산군의 심기를 이용하여 사림 세력을 제거한 정치적 사건 이었어요. 김일손은 국왕을 비방한 글을 실었다는 체포되었으며, 무자비한 국문 끝에 사형에 처해 졌어요.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35세 였어요. 이로써 그의 짧지만 강직한 삶은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의 죽음은 이후 조선 정치사에 있어 사림파의 고난과 부흥이라는 긴 여정을 상징하는 기점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