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나무는 목단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낙엽활엽관목으로, 모란과에 속하는 대표적인 관상식물이며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아온 꽃나무에요. 특히 중국에서는 꽃의 왕 이라 불릴 정도로 상징성과 미적 가치가 크며, 부귀, 영광, 복을 상징하는 식물로 취급되어 왔어요.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하며, 조선시대에는 궁궐과 양반가의 화단을 장식하던 대표적 귀한 꽃 이었어요. 모란나무는 키가 보통 1~2m 정도까지 자라는 관목 형태로서, 줄기가 반쯤 나무처럼 목질화된 것이 특징이며 나무줄기는 여러 갈래로 분지되어 관상적 형태미를 이루어요. 잎은 어긋나며 2~3회 깃꼴겹잎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자리는 톱니가 없으며 윤기가 돌고 넓은 타원형을 띠고..
그러나 남이는 빠르게 출세한 청년 무장으로서 당대 권력자들의 질시와 시기를 받았고 유자광, 신숙주, 정창손 등과 갈등이 있었는데 정치적 긴장 속에서 위기가 점차 고조 되었어요.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하면서 남이는 좌리공신 2등에 책록되고 병조판서, 도총관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였으나, 곧 유자광의 모함에 의해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1468년 체포되었고, 예종 즉위 한 해 만에 27세의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사형 당했어요. 그의 죽음은 많은 백성과 사대부의 안타까움을 불렀으며 이후 성종 대에 복권되어 관작이 회복되고 충의의 인물로 재평가 되었어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충신 남이 라는 이름으로 여러가지 야사와 설화 속에 등장 했고 남이장군 설화, 남이장군묘와 같은 유적들이 생기며 그의 충절과 무용을 기..
남이는 조선 세조~예종 대의 무신으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무장 중 한 사람이에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용맹하며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알려졌으며, 세조의 신임 아래 젊은 나이에 군권을 쥐고 요직에 오르며 조선의 북방 국경 방어에 크게 기여 했어요. 17세에 생원시에 합격 했고 19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20대 초반에 종친이자 공신 가문이 지배하던 군부 내에서 두각을 드러냈어요. 세조는 무장으로서 그의 재능을 높이 사 병조 좌랑, 충청도 병마절도사 등 요직에 차례로 임명하였으며 1459년 압록강 일대의 야인 정벌에 큰 공을 세워 1459년 우의정 정인지의 추천으로 19세의 나이에 함길도 병마절도사가 되어 6진 일대를 안정시키는 임무를 수행 했어요. 그는 북방 국경 수비의 핵심 지휘관으로 활동하며 여진족의..